평일도 인생이니까
🔖 스물다섯에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가 신세 한탄이나 하며 매일 글쓰기로부터 도망치던 내 책상 앞에 붙여 주었던 쪽지가 있다. "작가란 오늘 아침 글을 쓴 사람이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세계였다. 단지 오늘 아침 일어나 글을 쓰면 되므로. 물론 늦된 내가 그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달은 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의 일이었지만.
그리하여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삶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최고의 작가가 되는 것은 어렵더라도, 매일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동네 수영장에서 제일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되긴 힘들겠지만, 일주일에 세 번 수영 수업을 빠지지 않고 가는 것, 그래서 자유형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 세계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오늘의 일을 마치고 만족감 속에 맥주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대단한 성취를 좇거나 끊임 없이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나와 약속을 하고 조용히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되다'와 '하다'를 혼동하지 않으면 70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였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하는 건 성공 여부가 아닐지 모른다. 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하고 싶어서인가 하는 것.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되려는 욕심이지, 좋아하는 일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 요즘 내게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이미 읽은 책을 한 번 더 읽는 시간. 여러 곳에 가는 것보다 한 장소에 제대로 머무르는 일.
거기 좋았잖아, 또 가 보자,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좋다. 다시 가서 다시 좋아하는 일이 좋다. 읽었던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다른 곳에 밑줄을 긋고, 이전엔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을 발견하는 일이 좋다. 그런 독서는 꼭 천천히 하는 식사 같다. 한 끼를 때우기 위해 밥을 물에 말아 급하게 넘기는 게 아니라, 한 숟갈을 제대로 뜨고 천천히 꼭꼭 씹어 삼키는 식사. 그럴 때에야 비로소 이 책에서 느낀 것들을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기분이 든다.
그동안 내가 효율이라고 믿어 온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디에 갈 때마다 지도 앱을 켜서 최단 거리, 최소 시간을 재어 보듯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경험에도 효율의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 한 권을 빠르게 읽어 갖게 된 여분의 시간으로 다음 책을 읽으면 만족할까? 묻다 보면 답은 늘 같은 곳을 가리킨다. 시간은, 경험은, 결코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 그러니 우리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나는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닌데 마치 전부인 것처럼 오해 받고 있다고 속상해하면서, 상대에 대해서는 같은 오해를 반복하니. 나를 규정하듯 하는 말에는 나에 대해 뭘 아느냐고 불쾌해하면서 다른 이에게는 그런 말을 서슴지 않으니.
(...) 누군가를 어떤 종류의 사람에 쉽게 분류해 넣을 때마다, "그 사람 원래 그렇잖아" 하고 누군가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싶어질 때마다 떠올린다. 모두가 '척'하며 살고 있을 어떤 부분에 대해.
스무 살 시절, 우리가 바라본 서로가 과연 서로였을까. 그게 서른이 넘은 지금이라고 과연 다를까 생 각한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이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척, 이대로도 괜찮은 척 옛날 얘기나 나눌 때마다 오늘 우리가 나눈 숱한 대화들과 그 대화의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채 하지 못한 얘 기들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한다. 언젠가 친구가 말해 준 '좋아 보이기만 하는 인생은 있어도 좋기만 한 인생은 없다'는 말을 떠올린다.
🔖 나는 그때 충분히 혼자였다. 충분히 외로웠고, 충분히 자유로웠다. 그래서 그 시간은 결국 의미가 있었던 것 아닐까. 충분히 외로웠기 때문에 가끔 함께하는 시간들, 사람들이 고마웠다. 좋아하는 사람하고 보내는 시간만 귀하게 써야 하는 게 아니라, 나하고 있는 시간도 귀하게 써야 한다는 결 배웠다. 외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웠으므로 '나의 이 외로움을 소중히 여겨야지' 생각했다. 사람은 그렇게 혼자와 함께 사이를 건강하게 가로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너무 많은 것들로 연결된 세상에 살면서 나와 있을 시간을 점점 잃어간다. 너무 많이 말하고 너무 많이 만나고 너무 많이 보거나 듣는다고 생각할 때도 많다. 왜 조금이라도 쉴 틈이 생기면 나는 나와 있지 못하고 다른 무언가를 찾는 걸까.
(...) 그래서인지 가끔씩 깊은 밤,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면 생각한다. 나하고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혼자 있을 때 깃드는 고요를 소중히 여기고 싶다. 너무 많이 만나지 않고, 너무 많이 말하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 해야 할 말들만 한 뒤 다시 혼자로 잘 돌아오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는 혼자 있는 법 역시, 평생을 살아가며 배워야 하는 존재들이니까.